서울 젊은이들 사이에서 뜨는 ‘레트로 이발소’ 열풍… “미용실 말고 이발관 가요!”


요즘 서울 거리를 걷다 보면 눈에 띄는 풍경이 하나 있다. 20~30대 남성들이 번듯한 헤어살롱 대신 낡은 빨강·파랑·하양 회전등이 돌아가는 ‘이발소를 찾아 들어가는 모습이다. 포마드 향 짙은 클래식 펌, 크롭컷, 스킨페이드 같은 ‘아재 컷’이 아니라, 1950~70년대 미국·영국 바버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레트로 바버샵’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미용실은 너무 밝고 화려해서 부담스러워요. 이발관은 조용하고, 아저씨들이랑 수다 떨면서 면도도 받고 나오면 진짜 개운하죠.” 홍대 앞에서 만난 28살 직장인 김모 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근처 ‘바버샵’을 찾는다. 가격도 미용실(3~5만 원)보다 저렴한 1만5천~2만5천 원 선이라 부담이 적다고.

실제 2025년 들어 서울 곳곳에서 레트로 스타일 바버샵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홍대·합정·연남동은 물론, 성수·을지로·한남·이태원까지. 옛날 이발의자에 가죽 소파, 빈티지 면도기, 재즈 음악이 흐르는 공간이 기본 옵션이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 홍대 ‘빌리캣 바버샵(Billycat)’

- 한남동 ‘헤르(Herr)’

- 성수 ‘노커스(Knockers)’

- 이태원 ‘블랙마켓(Blackmarket)’

- 강남 ‘마제스티(Majesty)’ 등이 손꼽힌다.

이곳들의 공통점은 ‘남자만 받는다’는 점. 여성 고객은 아예 받지 않거나 별도 예약제로 운영한다. “여자 손님이 섞이면 분위기가 산만해져요. 남자들끼리 편하게 있고 싶어 하는 고객이 많아요.” 한 바버샵 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왜 갑자기 레트로 이발소일까? 전문가들은 ‘뉴트로(New-tro)’ 트렌드와 남성 그루밍 문화 확산을 꼽는다. 2024~2025년 소비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인 ‘레트로’가 패션·인테리어에 이어 헤어까지 번진 것이다. K-팝 아이돌과 배우들이 포마드 올린 클래식 헤어나 크롭컷을 선보이면서 젊은 층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페이드나 페이스 셰이빙(뜨거운 타월+직도면도) 같은 ‘서양식 바버 문화’가 SNS에서 화제가 되면서 불이 붙었다.

“10대 후반~20대 초반은 아이돌 헤어, 20대 중반부터는 클래식으로 넘어가요. 요즘은 30대 초반도 포마드 펌 많이 해요.” 성수동 한 바버샵 원장은 “하루 30~40명 손님이 오는데 90%가 20~30대”라고 전했다. 실제 인스타그램에서 ‘#서울바버샵’ ‘#레트로바버샵’ 해시태그를 치면 수만 건의 후기가 쏟아진다.

가격도 매력 포인트다. 일반 미용실에서 펌+컷 하면 10만 원 넘게 깨지는데, 바버샵은 컷 2만 원대, 펌 포함 5~7만 원대면 끝난다. 게다가 뜨거운 타월 서비스, 어깨 마사지, 얼굴 팩까지 기본으로 준다. “돈값 한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예약이 꽉 찬 곳도 많다.

물론 옛날 동네 이발소와는 다르다. 70~80대 어르신들이 주로 찾는 동네 ‘이용원’은 아직도 전국에 1만 곳도 안 남았지만, 새로 생기는 레트로 바버샵은 20~30대 젊은 바버(이발사)들이 운영한다. 그들은 해외 유학이나 유튜브로 기술을 배웠고, 포마드·클레이 왁스 같은 제품도 직접 판매한다.

“아버지 세대는 ‘빨리 깎아달라’고만 하시는데, 젊은 손님들은 사진 보여주면서 ‘이런 느낌으로 해주세요’ 해요. 대화도 훨씬 재밌죠.” 29살 바버는 웃으며 말했다.

레트로 바버샵 열풍은 단순한 헤어 트렌드가 아니라, ‘남자들의 공간’을 찾는 문화로도 읽힌다. 카페나 술집은 여성 손님도 많아 부담스러운데, 바버샵은 오로지 남자들만의 아지트 같은 느낌이다. 친구랑 같이 가서 맥주 한 잔 마시며 면도받는 사람도 있다고.

서울시 관계자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오래된 상권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옛 감성이 새롭게 보이는 것 같다”며 “을지로·성수 같은 곳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오늘도 홍대 거리에는 빨강-파랑 회전등이 빙글빙글 돈다. 미용실 대신 이발관을 찾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서울의 ‘아재 공간’이 MZ세대의 ‘힙한 공간’으로 환생하고 있다. 당신도 한 번 도전해볼 생각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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