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주희·김영진 부부의 'Totally Biased Guide'… 한국 인디 음악, 지인 50여 팀 추천으로 세계 팬 사로잡다


한국 인디 음악 씬이 오랜만에 활기를 띠고 있다. 대형 기획사와 K-pop의 그늘 아래서 늘 자금과 홍보 부족으로 고군분투해온 인디 아티스트들이 최근 한 부부의 손에서 빛을 보이기 시작했다. 맹주희(35)와 김영진(37) 부부가 운영하는 슈퍼소닉 스튜디오(SUPERSONIC STUDIO)가 발간한 자이너 'Totally Biased Guide to Korean Indie Music'이 그 중심에 서 있다. 이 100쪽 분량의 작은 책자는 단순한 가이드가 아니라, 부부의 지인인 50여 개 인디 그룹과 아티스트들의 생생한 추천으로 엮인 '편향된 사랑 편지'처럼 느껴진다. 2025년 3월 말 발간 이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아트북 페어와 대만 타이페이 아트북 페어에서 완판 사례를 빼고는 온라인 주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맹주희와 김영진 부부는 서울 홍대 인근에서 2018년 슈퍼소닉 스튜디오를 차렸다. 맹주희는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으로, 인디 씬의 포스터와 앨범 커버를 디자인하며 아티스트들과 인연을 맺었다. 김영진은 음악 큐레이터로, 과거 라디오 PD로 일하며 인디 음반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부부는 결혼 후 "인디 음악이 K-pop만큼 사랑받을 수 있도록, 우리 눈에 띄는 아티스트를 직접 발굴하고 알리자"는 공통된 마음으로 스튜디오를 시작했다. 그들의 활동은 콘서트 기획부터 팟캐스트, 자이너 제작까지 다채롭다. 특히 'Totally Biased Guide'는 부부의 '편향된 취향'이라는 제목처럼, 객관적 리뷰가 아닌 개인적인 추천으로 채워져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자이너 속에는 부부가 직접 인터뷰한 50여 팀의 목소리가 담겼다. 예를 들어, 록 밴드 'The Black Skirts'의 현성(본명 조현성)은 "인디는 상업적 성공이 아니라, 팬 한 명 한 명과의 연결이 핵심"이라며 자신의 데뷔 앨범 'Don't You Worry Baby'를 추천했다. 포크 싱어송라이터 'O3ohn'(오존)은 "바쁜 일상 속에서 들을 수 있는 솔로 피아노 곡"으로 'Bed' 앨범을 꼽았고, 힙합 듀오 'Fraktsiya'(프락티야)의 멤버들은 "거리에서 영감을 받은 비트"라며 'Urban Nomad'를 강조했다. 재즈 보컬리스트 'Norikot'(노리코트)는 "한국 재즈의 새로운 얼굴"로 자평하며 'Midnight Whispers'를, 일렉트로닉 아티스트 'Balming Tiger'(발밍 타이거)는 "클럽 사운드의 미래"라며 'January Never Dies'를 소개했다. 이 추천들은 단순한 곡 목록이 아니다. 각 아티스트가 "이 앨범을 들으면 왜 인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지"를 짧은 에세이로 풀어냈다. 부부는 "우리 지인들만 모았으니 편향됐지만, 그만큼 진심이 느껴질 거라 믿었다"고 말한다.




이 자이너의 힘은 국내를 넘어 해외 팬덤을 키우는 데 있다. 2024년 1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아트북 페어에서 맹주희와 김영진 부부가 직접 부스를 운영했을 때, 현지 팬들이 "K-indie를 처음 알게 됐다"며 장사진을 이뤘다. 태국 싱어송라이터 와드파(wadfah)가 자이너를 보고 스케치한 부부 초상화가 소셜 미디어에 올라가면서, 동남아 인디 커뮤니티에서 공유가 폭발했다. 대만 워크숍(2024년 3월 27일)에서는 200명 넘는 참가자들이 "한국 인디의 숨겨진 보석"이라며 추천 앨범을 검색했다. 부부는 이 자이너를 통해 'indie's moment'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서울 클럽 Zandari Festa에서 추천 아티스트 10팀을 초대해 라이브를 진행한 이 행사는 티켓이 2시간 만에 매진됐다. 현장에서 O3ohn의 어쿠스틱 세트와 Balming Tiger의 DJ 타임이 어우러지며, 관객들은 "인디가 이렇게 다채로울 줄 몰랐다"고 입소문을 냈다.

부부의 노력은 인디 씬의 구조적 문제를 직시한다. 한국 인디 음악은 정부 지원금이 연간 200억 원 남짓으로, K-pop 예산(1조 원 이상)의 1/50에 불과하다. 공연장 대관료와 음반 제작비가 부담스럽다 보니, 많은 아티스트가 풀타임 직장을 병행한다. 맹주희는 "우리는 크라우드펀딩으로 자이너를 만들었고, 판매 수익 전부를 다음 프로젝트에 재투자한다. 아티스트들에게는 무료 홍보를 약속한다"고 설명한다. 김영진은 "K-pop이 글로벌을 장악했지만, 인디는 로컬 스토리를 전하는 힘을 가졌다. The Black Skirts처럼 10년 차 아티스트가 새 팬을 만나는 게 바로 그 증거"라며 웃는다. 실제로 자이너 발간 후, 추천 팀 중 15팀 이상이 스트리밍 수치가 20~30% 상승했다. Norikot의 경우, 해외 팬레터가 50통 가까이 도착했다.

2025년 들어 부부의 행보는 더 빨라졌다. 4월 타이페이 워크숍에서 자이너를 배포한 데 이어, 6월에는 일본 도쿄 인디 페스티벌에 한국 팀 5개를 파견했다. 여기에는 Fraktsiya와 'Yon Yonson'(연 욘슨)이 포함됐다. Yon Yonson은 자이너에서 "멜로디의 중독성"으로 추천된 팀으로, 도쿄 공연 후 현지 레이블과 계약 논의가 이뤄졌다. 부부는 "인디는 홀로 가면 무너지기 쉽다. 커뮤니티가 핵심"이라며, 스튜디오 멤버십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연회비 5만 원으로 아티스트들이 네트워킹하고, 공동 앨범을 제작할 수 있게 한 이 프로그램은 현재 100명 가까이 가입했다.

물론 도전도 있다. 대형 페스티벌처럼 후원사가 없어 행사 비용이 부담스럽고, K-pop 팬덤의 '빠른 소비' 문화가 인디의 깊이를 외면하게 만든다. 하지만 맹주희와 김영진 부부는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왜 이걸 하냐면, 인디 아티스트들의 눈빛이 변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한 곡으로 삶이 바뀌는 순간을 지켜보고 싶다." 부부의 말처럼, 'Totally Biased Guide'는 이미 2판 준비 중이다. 이번에는 70팀으로 확대, 아시아권 인디와의 콜라보를 더할 계획이다. 한국 인디 씬이 부부의 손에서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이 여정, 팬들은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다. 과연 다음 추천은 어떤 '숨겨진 보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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